1. 서론: 모든 행위의 목적과 최고선(Summum Bonum)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첫 문장에서 '모든 기술과 모든 탐구, 마찬가지로 모든 행위와 선택은 어떤 선(Agathon)을 목표로 삼는다'고 선언하며 목적론적 세계관의 포문을 연다. 의학은 건강을 목표로 하고, 조선술은 배의 건조를 목표로 하듯이 인간의 모든 실천은 상위의 목적을 향한다.

그렇다면 다른 무엇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추구되는 궁극적인 최종 목적, 즉 최고선(Summum Bonum)은 과연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대다수의 인류가 이에 대해 일치하여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흔히 행복으로 번역됨)'라고 답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러나 쾌락, 부, 명예 등 세속적 가치는 그 자체로 완전하지 못하며 타인에게 의존적이거나 수단에 불과하다.

2. 인간의 고유 기능과 덕(Arete): 에우다이모니아의 본질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고유한 기능(Ergon)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단순한 생명 유지와 성장은 식물과 공유하고, 감각과 운동은 동물과 공유한다. 오직 인간만이 고유하게 소유한 기능은 바로 '이성적 원리를 지닌 영혼의 활동'이다.

따라서 인간의 최고선인 에우다이모니아는 수동적인 심리적 만족이나 일시적 감정 상태가 아니라, '탁월한 덕(Arete)에 일치하는 영혼의 능동적이고 이성적인 활동'으로 정의된다. 또한 이는 단 하루나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만들지 못하듯 온전한 생애 전체를 통해 지속되는 실천'이어야 한다.

3. 품성적 덕과 중용(Mesotes)의 황금률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지적 덕과 품성적 덕으로 나눈다. 품성적 덕은 타고난 본성이 아니라 끊임없는 실천과 습관화(Hexis)를 통해 영혼에 각인된다. 여기서 핵심 원리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중용(Mesotes)'이다.

중용은 기계적인 산술적 평균이 아니라, '마땅한 대상에 대해, 마땅한 때에, 마땅한 사람에게, 마땅한 목적을 위하여, 마땅한 방식으로 느끼고 행동하는 최적의 탁월함'이다. 예컨대 용기는 비겁(두려움의 지나침/부족)과 무모(지나친 자신감) 사이의 중용이며, 절제는 방종과 무감각 사이의 중용이고, 관대함은 낭비와 인색 사이의 중용이다. 극단은 항상 악덕으로 귀결되며, 오직 이성이 규정한 중용만이 영혼의 탁월함을 빚어낸다.

4. 실천적 지혜(Phronesis)와 관조적 삶(Theoria)

중용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선택하기 위해서는 지적 덕의 핵심인 '실천적 지혜(Phronesis)'가 필수적이다. 보편적 원리만을 아는 이론적 지혜(Sophia)와 달리, 프로네시스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상황 속에서 무엇이 인간에게 참된 유익이자 올바른 선인지를 꿰뚫어 보고 결단하는 탁월한 판단력이다.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는 10권에서 인간 안의 신적인 본성인 이성을 온전히 발휘하여 우주의 영원불변한 진리를 관상하는 '관조적 삶(Bios Theoretikos)'이야말로 신적인 자족성과 영속성을 지닌 가장 지고한 행복의 형태임을 천명하며, 고대 그리스 헬레니즘 사유의 찬란한 정점을 완성한다.

학술 참고문헌 및 원전 판본 (Bibliography)

  • 대한철학회 및 한국심리학회 표준 학술 용어 총람 (2024 증보판)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SEP) 학술 레퍼런스 데이터베이스
  • Oxford University Press / Cambridge University Press 고전 학술 원전 교열본